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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년 전 조선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자신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글을 세상에 펴냈다. 한글은 그 어떤 소리도 글자로 표시할 수 있는 데다 반나절이면 쉽게 터득할 수 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 한글이 세월이 갈수록 고생하고 있다. 그것도 남이 아닌 우리가 고생시키고 있다.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간판을 보라. 우리말로도 얼마든지 표기할 수 있는데도 영어 일색이다. 신문을 보라. 한글을 읽는 건지 영어를 읽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특히 경제면은 가관이다. 한 문장에 한글보다 영어가 더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한글을 조사로만 사용하는 문장도 수두룩하다. TV와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라. 한국방송인지 영어방송인지 모를 정도로 영어가 범람하고 있다. 여기가 한국인지 영어권 국가인지 헷갈릴 정도다.좋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제대로 써야 할 게 아닌가. 국적 불문의 ‘콩글리시’는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잘못 쓰고 있다면 고쳐야 하는데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인다. 틀린 채 그대로 사용한다. 강심장도 이런 강심장이 없다.“우리끼리만 통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강변한다면 할 말은 없다.그렇다면 한글날은 뭐하러 있는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제정한 것은 우리말을 사랑하자는 취지와 함께 한글뿐 아니라 외래어, 외국어를 제대로 쓸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던가.도대체 ‘아이돌 그룹’이라는 게 뭔가. 인기 있는 가수들을 칭하는 것 같은데, 영어권 국가에 가서 ‘아이돌 그룹’이라고 말해 보라, 통하는지. ‘아이돌 스타’는 또 무슨 말인가. 단어 조합도 참 잘한다.한때 휴대전화기 또는 휴대폰을 ‘핸드폰’이라고 해서 고소를 금치 못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는 ‘손전화’라는 단어가 느닷없이 등장해 어리둥절하다. 그것도 언론사들이 사용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물론 우리 국어사전에 ‘손전화’를 ‘토박이말로 만든 새말’이라고 기술되어 있지만, 실상 ‘손전화’는 북한에서 쓰는 표현이다. 우리는 그동안 ‘휴대폰’ 또는 ‘휴대전화기’로 써오지 않았던가.‘손전화’라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표현이다. ‘핸드폰’을 순우리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핸드폰’이 영어인가. 영어권 국가에서 ‘핸드폰’이라고 말해 보라,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북한식 표현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요즘 남북 화해 분위기에 편승해 북한식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언론사들이 적지 않아 우려스럽다.얼마 전 끝난 아시아 경기대회를 전후해 남북공동 입장과 남북 단일팀 등을 포함해서 쓰는 ‘공동 진출’이라는 북한식 표현을 우리 언론사들은 여과 없이 그대로 사용했다. ‘4·27 판문점 선언문’의 영향 때문으로 보이긴 하지만,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영어를 섞어 쓰면 ‘있어’ 보이는가, 유식해 보이는가. 북한식 표현을 쓰면 참신해 보이는가. 우리말이 엄연히 있는데도 굳이 영어나 북한식 표현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세종대왕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정신없이 벌어지고 있다.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9-28 16:57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한여름 어느 날, 60대 중반인 지인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한 후 함께 사무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시원한 생수를 지인에게 건네는 게 아닌가. 사무실로 돌아온 후 그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생면부지의 아주머니가 왜 생수를 주던가요?” “내가 부처상이라 그랬다는군요.”사실 그 지인은 누가 봐도 부처 같은 용모를 지니고 있다. 용모만 그런 게 아니다. 실제로 그는 남들에게 잘 베푼다. 사람을 가리지도 않는다. 전화도 참 많이 걸려온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부탁하는 전화다. 사람 좋은 지인은 그 부탁들을 다 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손해 보는 일도 많다. 그래도 그는 괜찮다고 한다. “베푸는 게 낫지요.” 그에게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향기가 느껴진다.그는 종교의 가르침인 내려놓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았다. 남에게 베푸는 것으로 그는 내려놓음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비슷한 시기, 필자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퇴근시간이라 열차 안은 승객들로 매우 북적거렸다. 자리에 앉아서 간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금방 자리가 생겼다.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승객이 내렸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다.그러나 그 행운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휴대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바로 앞 옆에 8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시골에서 갓 올라온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앞에는 한 아주머니가 연신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전도사님” “집사님” 하는 걸 보니 교회 구역장인 듯했다. 전화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아주머니는 끝내 그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결코 일어날 의지가 없음을 확인한 필자는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부처상의 지인과는 달리 교회 구역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예수의 가르침인 내려놓는 방법을 아직은 터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직은 베풂과 내려놓음이 동의어인 줄 모르는 듯했다.오해하지 마시라. 필자는 지금 특정 종교를 폄훼하려는 게 아니다. 종교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예를 들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됐을 뿐이다.신자들의 영혼을 치료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수 개월간 친자 의혹 등으로 퇴진 압박을 받아온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전격 사퇴했다고 한다. 사퇴 날짜를 번복했다가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되자 원로회의 인준을 하루 앞두고 “산중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단다.기독교 대형교회인 명성교회도 부자 세습 문제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가 청빙되면서 부자세습 논란이 일었는데, 최근 총회 재판국이 김 목사 손을 들어주자 청빙결의 무효표를 던진 재판국원 7명 중 6명이 사임서를 제출하는 등 큰 후폭풍이 일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교회로 꼽히는 소망교회의 김지철 목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세습 논란을 일으킨 김삼환 목사에게 “교단을 떠나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왜 이런 일들이 속세와는 구별된 종교계에서 일어날까.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반대말로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라는 게 있다. ‘병들고 부패한 귀족’이라는 뜻이다. 그 악취가 정치계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계, 문화계 등 도처에서 진동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향기가 ‘방향제’ 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노블레스 말라드’의 악취가 신성하고 깨끗해야할 종교계에까지 스멀스멀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9-11 07:56

“개천절이라는 건국절이 있는데 또 무슨 건국절이 필요한가?”최근 평소 알고 지내는 외국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건국절이 언제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불 때, 우리나라에는 개천절(10월3일)이라는 건국일이 분명 존재한다. 개천절을 영어로 ‘National Foundation Day of Korea’라고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국어사전에도 개천절은 ‘우리나라의 건국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듯 건국일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왜 한국인들은 사실상의 건국일인 개천절과는 전혀 관계없는 1919년 4월11일과 1948년 8월15일이 대한민국의 건국일이라고 서로 싸우고 있냐는 것이다.그는 국가란 한 번 세워지면 그 국가에 속한 민족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 한 영원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가의 이름은 중간 중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고조선, 신라, 고려,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등으로 말이다. 따라서 같은 민족인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건국일은 개천절이라며 소모적인 논란은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지적대로 우리 사회는 매년 8·15 광복절만 되면 건국절 논란으로 시끄럽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1919년 4월11일을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쪽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민주공화제 정부 수립과 상해 임시정부 법통을 명시한 현행 헌법 전문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쪽은 1919년에 건국이 되었다면, 당시의 정부를 임시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양쪽 다 나름 일리 있어 보인다.국가라는 개념적 측면에서 볼 때,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국제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가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국민, 영토, 정부, 주권이다.국민을 어떻게 정의하는 가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국민은 한 지역에 영구히 거주하며 같은 국적을 가진 인구를 말한다. 영토 역시 국가를 세우기 위해선 자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또 이러한 영토를 효율적이며 안정적으로 관리할 정부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자유롭게 타 국가와 외교를 수립할 수 있는 자주권이 있어야 한다.1919년에 중국 상해에 설립된 임시정부가 과연 국가 구성 조건을 충족했는가.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건국 선포는 글자 그대로 선언에 불과하다. 1919년 당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있던 우리 국민의 국적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영토 역시 일본에 귀속됐다. 비록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형태를 지니고는 있었으나 자주권이 없어 타국들로부터 국가로 인정을 받지 못해 자유롭게 외교를 수립할 수도 없었다. 즉 임시정부는 건국의 시작이나 모태로 볼 수는 있지만 국가 수립이라고 하기엔 국제법적으로 부족했다.그러나 1948년 8월15일의 경우, 국민, 영토, 정부, 주권의 국가 구성 조건이 모두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패망으로 1945년 8월15일 광복이 되어 국민, 영토, 주권은 회복되었으나 정부는 없었다. 임시정부는 미군정이 인정하지 않아 해체됐다. 그러니까 3년 동안은 무정부 상태로 온전한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 견해 역시 완전한 해석이라 할 수 없다. 반론의 여지도 있어 보인다. 다만, 개천절이라는 건국절이 있는데 또 무슨 건국절이 있어야 하느냐며 논쟁을 끝내라는 외국인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정답 찾기가 쉽지 않은 데다 건국절 논쟁 자체가 여러 문제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국민적 합의 재도출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 수립 당시 국가의 기원을 고조선 건국일로 지정해버린 상태에서, 건국일을 새로 지정해야 한다면 국가의 기원이 단군 조선이 아님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또 대한민국이 신생국인지 아닌지도 합의해야 한다. 신생국이라 할 경우 기원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도출해야 한다. 이게 쉬운 일인가.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만 일으킬 건국절 논쟁은 그래서 그만 해야 한다.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8-24 16:32

얼마 전, 2018 러시아월드컵 벨기에와 일본의 16강전을 중계하던 KBS의 한준희 해설위원이 편파적인 멘트를 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한 위원은 교체선수로 들어온 벨기에의 샤들리가 후반 막판 3-2 승리를 결정짓는 골을 넣자 샤들리에 대한 사과와 감사를 반복했다. 샤들리의 교체 투입 전략에 비판을 가한 데 대해 사과했고, 결승골을 넣은 데 대해 수차례 “감사하다”고 한 것. 이에 일부 누리꾼들이 들고 얼어났다. KBS가 공영방송임을 지적하며 편파 중계를 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한 위원은 “순간적으로 본능이 발현됐다”며 사과했다. 반일감정에서 나온 순간적인 멘트였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KBS가 개그맨 김제동 씨를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로 기용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었다.그러자 KBS 공영노조가 즉각 반발했다. 편향된 정치적 성향을 지닌 김 씨의 기용으로 공영방송이 지켜야 할 공정성, 객관성, 균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사태가 시끄러워지자 KBS는 뉴스가 아니라 새로운 포맷의 시사토크쇼라고 해명했다.  KBS는 공영(公營)이라는 단어를 참으로 이상하게 해석하는 것 같다. 혹시 공영(公營)을 ‘편영(偏營)’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쪽으로 치우친 김제동 씨를 시사토크쇼 MC로 기용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공영(公營)방송이라 해서 시사토크쇼 하지 말라는 법 없다. 또한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개그맨 출신 방송인을 앵커 또는 MC로 기용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문제는 그 앵커 또는 MC가 어떤 정치적 스탠스를 갖고 있냐는 것이다. 공영(公營)방송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 공(公)이라는 글자의 뜻이 그렇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그림에서 만들어진 글자다. 그래서 공무원(公務員)은 민원인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똑같이 대해야 하는 것이다. 공영(公營)방송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KBS에 시청료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KBS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수, 진보 모두가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김제동 씨가 과연 그런 인물인가?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아직도 신뢰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의견의 다양성과 공정성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편집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실행하기 때문이다.  KBS도 나름 BBC와 비슷한 가이드라인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레토릭으로만 존재할 뿐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데 있다.  공영(公營)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정치권력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면 자칫 ‘공영(恐營)방송’ 또는 ‘공영(倥營)방송’이 될 수 있다. 1980년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KBS는 어떻게 했나. 마치 북한방송을 따라하듯 한 독재자를 미화하는 데 혈안이 되지 않았던가. 지금 생각하면 당시 KBS는 참으로 무섭고 어리석은 방송이었다.  그땐 서슬 퍼런 군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치자. 일단 살고 봐야 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오해 마시라. KBS가 지금도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했던 때가 있었기에 더 이상 그 어떤 정치권력에도 눈치를 보지 말고 중립적인 방송을 해달라는 말이다. 그래야 떳떳하게 공영(公營)방송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8-10 18:31

학문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을 학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학문이라는 게 널리 이로운 것이 돼야 한다면, 학자는 책 속에만 파묻혀 있지 말고 세상으로 나와 만인의 고통에 답해야 한다. 그렇기에 학자가 정치에 뛰어드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문제는 소신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념과 철학으로 꿋꿋이 버텨 내는 게 학자의 본분이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그랬다.  우리나라 보수당이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이 침몰한 당을 구해줄 인물로 김병준 전 국민대 명예교수를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어이없다.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진보진영 인사를 보수당의 수장으로 모셨을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진보 흉내를 내서라도 당이 다시 일어서기만 한다면 된다는 것인가.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말인가. 그것이 보수의 가치인가.김병준, 그가 누구인가. 정체 불명의 학자다. 학자라면 적어도 자신의 정체성만큼은 확실해야 한다. 지나온 그의 행적을 보라.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었다. 진보가 어려울 때 불러주면 거길 가고, 보수가 어려울 때 불러주면 거기에 가는, 좋게 보면 ‘경륜 기부’이고 현실적으로 보면 ‘권력 지향’적 행보다. 진보 정권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 등 요직을 역임한 그는 2016년 박근혜 정권의 국무총리직을 수락했다가 야당의 반대와 이어진 탄핵정국으로 낙마했다.그는 같은 해 진보 정당이던 국민의당으로부터도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가 당 중진들의 반대로 현실 정치권 진입에 실패했다. 그는 “과거에 청와대와 정부에서 일해 봤던 사람으로 학자로서 국민의당에 재능기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이런저런 이유로 아무 곳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던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 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줄 것을 제의받았으나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늦은 게 아니라 승산 없는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더욱 만신창이가 된 한국당에서 SOS를 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개선장군’처럼 입성했다. 마침내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좋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찌 됐건, 기왕에 한국당을 맡았으니 과거지사 다 잊고 잘해 주길 기대했다.그러나 그가 지금 하고 있는 행태를 보라. 황망하기 그지없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한 국회의원의 말에 “노무현 정신은 여기도 대한민국, 저기도 대한민국이다”라고 받아쳤다. 이념을 통합하겠다는 말인지,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더욱이 보수당에 와서 ‘노무현 정신’을 거론하다니, 어불성설이 아닌가.그런 그가 이제는 한국당에 ‘신보수 가치’를 심겠다고 공언했다. ‘노무현 정신’을 한국당에서 계승하는 게 신보수 가치인가.한국당에 가기 하루 전날엔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만나 “다시 모여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통합을 말한 것이다.그가 말하는 ‘신보수 가치’에는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주군에게 비수를 꽂은 뒤 당을 박차고 나간 자들과 합치는 것도 포함돼 있나 보다. 레토릭만 장황했지 정작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뭉개버리는 게 신보수인가. 그래서, 그런 그들과 합쳐서 무엇을 도모하겠다는 건가. 한국당을 손에 넣고 바른미래당마저 흡수한 뒤 대권이라도 꿈꿔보겠다는 건가.이념도 불분명하고 권력 욕구가 강한 학자가 한국당에 온 사실도 문제지만, 그런 인사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한 한국당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바야흐로 한국당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무이념 정당’이 되고 말았다.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7-27 17:46

2000년대 초 ‘봉숭아학당’이라는 TV 코미디는 일제강점기 때를 배경으로, 신식 학당에서 신식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너였다. 등장할 때마다 항상 모든 이야기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맹구를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와 학당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코너답게 당시 많은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바보상자’ TV 속 코미디였기에 가능했다.그런데 ‘봉숭아학당’과 비슷한 정당(政黨)이 TV도 아닌 실제 정치권에 등장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자유한국당 이야기다. 이들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코미디극은 ‘봉숭아학당’의 그것을 넘어선다는 평가마저 나온다.그들의 코미디는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됐다. 사실 이들은 훨씬 전부터 두 패로 나뉘어 서로 치고받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정권창출과 장권재창출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는 휴전을 하기도 했다.그러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마침내 대충돌했다.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옥새 파문’을 일으켰다. 당의 대표라는 인사가 공천장에 찍을 도장을 갖고 고향으로 날아가 버리는 진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유권자들은 총선에서 그런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에게 옐로카드를 내보였다. 180석도 가능하다고 큰소리치던 그들을 원내 제2당으로 밀어낸 것이다.새누리당은 그러나 정신을 못 차렸다. 두 패는 계속 싸우기만 했다. 심지어 한 패는 좋든 싫든 끝까지 함께 해야 할 주군을 되레 권좌에서 몰아내는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보였다. 맹구가 그랬듯 당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경고를 했던 유권자들은 이번에는 아예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조기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선택하면서 새누리당을 집권당 자리에서 끌어내렸다.그 때서야 새누리당은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일부 의원들은 집을 뛰쳐나가고 남은 자들은 자유한국당으로 당 간판을 바꿨다. 그러나 돌아선 민심을 돌이키는 데는 턱 없이 부족했다. 집 나간 인사들이 복당하는 코미디를 연출한 뒤 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또다시 두 패는 집안싸움을 벌였다.그런 그들에게 유권자들은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통해 한국당에 철퇴를 가했다. 대구와 경북을 제외하고 전 지역을 파랗게(민주당) 물들게 한 것이다.이 한 방으로 한국당은 사실상 죽었다. 숨만 쉬고 있을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당’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됐다.다시 일어나보려고 애를 쓰고는 있으나 그 과정이 또 코미디다. 두 패는 여전히 자기네가 잘났다며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있고, 비상대책위원장을 모시기 위해 벌이는 행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진보들의 ‘전가의 보도’인 ‘파격’을 흉내 내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진보가 했으니 보수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발상이 빚은 비극이었다.얼마나 한심했으면 국민들조차 빈정댈까. 비대위원장을 국민들로부터 추천을 받겠다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거론했다. 이 보다 더한 인사도 있었을 것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아무리 비대위원장 모시기가 어렵다 해도 이런 식의 장난기 섞인 방식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기보다는 짜증만 나게 할 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만 바라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한국당은 더 이상 보수답지 않은 행동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한국당은 없어지는 게 낫다”는 대구 민심이 두렵지도 않은가!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7-16 08:59

 세상이 점점 야박해져 가고 있다. 자기만,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하다.세상은, 지식이든 재물이든 그 무엇이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사는 공생의 장이거늘, 어찌하여 전쟁으로 난장판이 된 나라를 떠나 오갈 데 없이 떠돌다 머나먼 우리 땅을 피난처로 택한 사람들을 내몰 수 있다는 말인가.    예멘 난민 이야기다.끊임없는 내전으로 황폐해진 나라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불안하기만 한 예멘 국민들은 살 길을 찾아 오래전부터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우리나라 제주도. 최근 그 숫자가 갑자기 많아지자 정부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 난민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받아줘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전 세계는 난민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EU는 난민들을 적극 수용했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난민 문제가 자국 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자 하나둘씩 난민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난민들이 ‘물에 빠진 놈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놔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을 받아준 국가에게 먹고 입을 것은 물론이고 일자리까지 달라고 떼를 쓴다고 한다.그렇지 않아도 경제 사정이 어려운데 난민들까지 챙겨줄 여유가 없는 국가들은 결국 다른 국가에게 난민들을 서로 떠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난민들 도와주다가는 자국마저 거덜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우리에게도 이제 더 이상 난민은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좋든 싫든 난민 문제가 현실이 됐다는 말이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정부와 제주도는 난민신청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난민법을 개정하고 재외공관 비자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난민심사기간을 단축하기로 했단다. 또 법무부는 제주도에 예멘의 난민 신청자들이 대거 들어오자 신규 유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비자 없이 입국한 난민신청자들이 제주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제한하고 비자 없이는 입국을 못 하는 나라에 예멘을 추가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예멘 난민의 유입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EU 국가들처럼 국가이기주의 움직임에 동참하겠다는 말이다.정말 잘하는 일일까? 새삼스럽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진부한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탈북자들 상황과 비교하기도 싫다. 그저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볼 따름이다.우리는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다른 나라들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잘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우리가 열심히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은 그들이다.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구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보은(報恩)할 줄 알아야 한다. 설령 그 대상이 우리나라에게 도움을 준 일이 없다 해도 말이다.왜냐하면, 세상일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리가 난민이 되어 예멘이라는 나라로 탈출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럴 일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말라. 남의 나라 도움을 받았던 우리가 지금 남을 도울 수 있는 나라가 됐듯이 예멘의 난민들이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지 어찌 알겠는가.자국이기주의가 지나치면 별 희한한 일도 발생한다. 요즘 미국이 그렇다. 무시무시한 연쇄살인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난리를 치는 나라가 미국이다.백번 양보해서 자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이유로 국경지대에 장벽을 쳐 불법이민자들의 미국 유입을 막겠다고 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불법 이민자들을 잡아놓고 어린 자식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떼놓다니. 거센 반발로 한 발 물러서기는 했으나 인권을 그리 중시한다는 미국이 어쩌다 이런 해괴한 생각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우리도 미국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자국이기주의가 지나치면 그보다 더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헌에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목적으로’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하늘 아래에 있는 사람 모두 더불어 잘 살게 하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가?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6-29 17:31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가 있다.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이 어느 날 반지 세공사를 불러 자신을 위한 반지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자신이 큰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교만하지 않고, 전쟁에 져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에도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는 당부와 함께.반지 세공사는 왕의 명령에 따라 반지를 만들긴 했으나 반지에 새겨 넣을 글귀가 잘 생각나지 않아 며칠을 두고 고민한다. 결국 지혜롭기로 유명한 솔로몬 왕자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세공사의 설명을 들은 솔로몬은 후세에 길이 남을 유명한 글귀를 알려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자만(自慢)에 대한 경고와, 좌절에 대한 격려 두 가지를 직관적으로 조합한 명언이다.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노인을 위로(慰勞)하자 노인은 “이게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냐”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노인의 말대로 몇 달 후 경사(慶事)가 났다. 도망갔던 말이 한 필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온 것이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노인은 “이것이 도리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기뻐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그만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위로(慰勞)하며 함께 걱정했다. 그러자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말했다.노인의 말은 또 적중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전쟁이 터져 마을 젊은이들이 싸움터로 불려 나가게 되어 대부분 죽었다. 그러나 다리를 다친 노인의 아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했다.유명한 중국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유래다. 인생에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6·13 지방선거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한국당은 보수의 메카인 대구와 경북 2곳에서만 승리했을 뿐 글자그대로 참패했다.승리한 민주당은 축제 분위기다. 당연하다. 선거 전 터진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중앙권력은 물론이고 지방권력까지 거머쥐게 됐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민주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여세를 몰아 2년 후의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두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장기집권의 꿈을 실현하려 들 것이다. 반면 한국당은 그야말로 초상집을 방불케 한다. 지난해 대선에서의 참패에 이어 1년 만에 또다시 굴욕을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러다 정말 문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사 다 그렇듯이 오늘 이겼다고 해서 영원히 이긴다는 보장이 없고, 오늘 졌다고 해서 영원이 진다는 법 없다.민주당과 한국당이 예로 든 솔로몬의 명언과 중국의 고사성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민주당은 승리했을 때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절망하여 낙심할 때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달아난 말이 준마를 데리고 왔다고 마냥 기쁨에 도취해서도 안 된다. 그 준마를 타다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당 역시 대패했다 하여 좌절할 필요가 없다. 2006년 지방선거를 돌아보라. 그 때는 압승했다. 그대들은 그러나 그 때 승리감에 도취되어 교만했다. 그러니 이번 선거에서의 패배는 너무나 당연했다. 그렇다고 큰 절망에 빠져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용기와 희망을 갖고 다시 시작하라.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6-15 16:40

#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 7월27일, 미국의 윌리엄 태프트 육군 장관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로 일본을 방문해 도쿄에서 가쓰라 다로 총리와 기밀 회의를 갖는다.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주요 의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이틀 뒤인 7월29일 둘은 3가지 사항에 합의했다.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미국으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영국과 러시아에게도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차례로 인정받은 후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야욕을 노골화한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1910년 8월29일 마침내 주권을 완전히 빼앗는다.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이처럼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의 동의를 얻어 한반도의 식민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해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945년 2월4일, 소련 흑해 연안의 얄타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 소련의 요시프 스탈린 최고인민위원 등 연합국 수뇌들이 모여 세계2차 대전에서 패색이 짙은 독일의 전후 관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다.11일까지 열린 회의에서 이들은 미국·영국·소련·프랑스 4국이 독일을 분할 점령한다는 원칙을 세운다. 일본 등 다른 패전국이나 우리나라 등 광복을 맞는 민족에 대해서도 별도의 방법을 찾아 합의한다. 특히 소련의 대일 참전 조건으로 루스벨트와 스탈린은 우리나라에 대한 신탁통치 실시를 약속한다. 이른바 얄타회담이다. 이후 연합군 참모장공동회의에서 전후의 한반도는 미군과 소련군이 분담하여 점령하기로 약정한다. 결과적으로 얄타회담은 민족분단을 야기하는 계기가 된다.# 1950년 1월12일,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전미국신문기자협회에서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마오쩌둥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에서의 미국 방위선을 알류산열도( 일본 - 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밝힌다. 이른바 ‘에치슨 선언’이다. 이 선언은 미국이 한국,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를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시킴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는 대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비춰졌다. 그 결과 북한은 6 ·25전쟁을 일으킨다.  #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강국들도 숟가락 얹기에 혈안이 돼 있다.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전을 방불케 한다.이런 와중에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미국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가능성에 대해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주한미군 상당수 감축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국방수권법안이 최근 상원 군사위원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미국이 한·미동맹 관계를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그러나 상황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아쓰라-태프트 밀약, 얄타회담, 애치슨 선언 때처럼 미국은 자국의 편의에 따라 한국을 버릴 수도 있다. 절대 아니라고 할 자 있는가. 알고 있으면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이 서글플 따름이다.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6-08 19:57

미국을 대표했던 대중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노래 중에 ‘미국은 나에게 어떤 나라인가(What is America to me?)’ 라는 질문을 던지는 곡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주의, 다양한 종교와 인종, 표현의 자유가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라고 결론 내렸다.일반 미국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미시간대학교에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타인 존중, 상징적인 애국심, 자유, 안보, 자립심과 개인주의, 기회균등, 앞서가기, 행복추구, 정의와 공정성, 비판적인 애국심 등을 핵심적인 미국의 가치로 여겼다.그래서 그들은 무슬림 이웃이 괴리감을 느낄까 봐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 대신에 “해피 홀리데이”라고 인사했다. 특히 라마단 기간에는 무슬림 피자배달부가 맥주 배달을 거부하더라도 이해했다. 또 외국인 학생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공립 초·중·고에 성조기를 걸지 않았다. 언제 배치될지 모르는 여자 군인들을 위해서는 전 부대 막사에 여성 화장실을 유지했다.이런 나라가 미국이었고, 이런 가치들 때문에 세계 최강의 나라로 지탱할 수 있었다.  그랬던 미국이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면 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최근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의 반대급부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안전보장(CVIG)을 제공해 주겠다고 김정은에게 밝혔다는 것이다. 비핵화 이후 체제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영구적 비핵화와 안전보장’ 합의를 조약으로 의회에 제출하겠다고도 했단다.이 무슨 미국답지 않은 말인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미국의 가치를 송두리째 버리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이는 무언가를 이룰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소리로 들려 섬뜩하기조차 하다.미국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질범과 협상하지 않는다. 설사 인질이 희생된다 해도 결코 인질범과는 흥정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지켜 왔다. 흥정하면 더 많은 인질범이 생기기 때문이다.그런 미국이 지금 북한 핵무기를 체제 안전보장과 맞교환하려고 하고 있다. 북한과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좋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어디 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래서 눈감아주기로 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흥정카드가 왜 하필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인가?북한 체제 안전보장이란 쉽게 말해 지금까지 이어온 수령체제를 앞으로도 용인해주겠다는 뜻이다. 독재 정권을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다. 인권이 말살된 체제를 말이다.남의 나라 체제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가치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른바 ‘경찰국가’라는 미국이 인권이 유린당하는 나라의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이는 마치 가족들은 온갖 학대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데도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가장이 흉기를 들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흉기를 버리면 그 가장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뤄 낼 수 있는 미국의 유일한 전략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불안해 하는 김정은이 덥석 물 수 있는 최상의 미끼라는 것이다.설사 그 분석이 옳다 해도 체제 안전 보장 카드에는 동의할 수 없다.그렇지 않아도 미국에서는 지금 미국의 가치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어지고 인종차별적인 사건들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에서 유례없는 불법 이민자 추방이 이뤄지고 있고, 여성을 비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보호무역으로 돌아서고 있기도 하다.  “가치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북한과의 협상도 이 같은 미국 내 기류의 연장선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미국에게 묻는다. 앞으로도 인질범과 흥정할 것인가?시나트라가 자랑스러워 했던 그 미국은 지금 어떤 나라인가?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6-08 09:29

 “민변이 나가도 너무 나간다. 동성애를 옹호 조장하는 운동에 앞장서더니, 자국민을 구해 온 국정원을 고발하다니.미국 CIA나 이스라엘 모사드를 영화에서 보면서 우리나라 국정원도 중국이나 타 공산권에 억류되어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인 북한주민들을 구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만약 실제로 국정원이 기획하여 캄보디아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구해냈다면 상을 줄 일이지, 그게 벌을 받을 일인가? 이러면 앞으로 누가 자기 목숨 내놓고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구하겠다고 나서겠는가?민변은 북한주민들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인하는가? 민변에도 상식과 양심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믿는데 만약 집행부가 이렇게 빗나간 일을 한다면 회원들이 각성하고 나서야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의 지인 중 한 명인 미국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최근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 12명을 강제로 탈북시켰다며 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을 강요죄와 체포·감금죄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것을 보고 한 말이었으리라.민변은 전 국정원 간부들을 고발하면서 “한 방송사 보도로 이것이 총선 승리를 위한 (국정원의) 납치극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국정원이 천인공노할 범죄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이웃 가정의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학대당하고, 거기에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자. 어찌 할 것인가?미국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필자의 지인은 아마도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그 아이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그 집에서 구출해야 한다고 호소할 것이다. 신고를 받은 경철은 당연히 아이들을 구출해야 한다며.민변은?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경찰 신고는 고사하고 경찰이든 누구든 그 아이들을 구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것 같다. 인권 유린이고, 구출이 아니라 납치라고 할 것이다. 그래야 앞뒤가 맞다.학대당하고, 굶고 있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게 입만 열면 인권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해야 할 도리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그 지옥에서 탈출시키는 게 맞는가.좋다. 백 번 양보해 설사 그것이 ‘납치’였다고 치자. 그래서 그들을 북으로 다시 보냈다고 하자. 그들은 북에서 어떻게 지내게 될까.잘 살 것이라고? 정말 그리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민변은 아마도 그들이 잘 살든 못 살든 북으로 갔으니 우리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침묵해왔으니 말이다.그러나 말이다. 입장 바꿔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민변 소속 변호사 가족 중 누군가가 공산국가에 억류돼 고생하고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 때도 침묵할 것인가? 국정원이 구출해줬는데도 이를  납치라며 고발할 것인가? 그리고 그 가족을 다시 그 공산국가로 돌려보낼 것인가?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5-18 10:58

# 기(起)1985년 핵비확산조약(NPT)에 가입한 북한은 8년 뒤인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의 특별사찰에 반발해 NPT 탈퇴를 선언했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거세게 압박하자 탈퇴를 유보했다. 그러나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2003년 1월 다시 NPT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3년 후 1차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6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핵보유국임을 선포하기도 했고,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발사에 성공했다고도 주장했다.# 승(承)그러자 미국은 즉각 반발했다. 2017년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간의 설전이 험악하게 벌어졌다. 미국은 금방이라도 북한에 선제타격을 가할 태세였다. 한반도에 전쟁 분위기가 고조됐다. 국제사회도 미국을 거들었다.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는 점점 높아갔다. 북한의 맹방인 중국도 이 같은 국제사회 움직임에 마지못해 동참했다. 북한의 고립무원(孤立無援) 신세는 불가피해졌다. # 전(轉)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위기에 처한 김정은이 2018년 신년사에서 ‘평화’라는 출구전략을 가동한 것. 평창올림픽에도 참가하고 경색됐던 남북 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혔다. 북한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이 남쪽에 내려와 공연했다. 그러자 한국 정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의 평화 공세를 환영했다. 대북 특사도 보냈다. 이들에게 김정은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의지를 밝혔다. 트럼프도 김정은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판문점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 이 모든 일이 글자 그대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진행됐다.    # 결(結)돌발변수가 일어나지 않는 한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한반도 평화라는 성과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자국을 향한 ICBM 개발 중지를, 북한은 체제보장이라는 ‘선물’을 각각 거머쥘 것이다.그렇다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시작된 이 사태의 끝은 무엇일까.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 특보가 그 답을 제공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일개 학자가 아닌 대통령 특보의 입장에서 한 말이어서 그 무게감이 더하다. 게다가 그동안 그가 한 말들이 실제로 이어진 바가 있어 청와대의 발표대로 주한미군 철수 발언이 그저 개인적인 의견으로 볼 수 없다.결국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다. 그 단서는 판문점 선언에서도 찾을 수 있다.선언문 말미에 나온 비핵화에 대한 부분이 그것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에는 있지도 않은 핵을 포기하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왜 그랬을까?선언문이 적시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의 대상은 북한 핵무기는 물론 한국이 아닌 주한미군의 전술핵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북한 핵무기를 억제하기 위해 한국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전술핵까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듯한 명분이 아닌가.주한미군의 전술핵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문 특보의 주장대로 주한미군의 철수가 아니겠는가. 평화협정을 체결한 마당에 주한미군이 계속 한국에 주둔해야 할 이유는 없어지게 된다. 이 또한 그럴듯한 명분이 아닌가. 청와대가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별개라며 진화에 나서고,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평화협정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진다면 어쩔텐가? 광화문 일대가 또 ‘촛불’로 뒤덮인다면 그 땐 어쩔 것인가? 그래도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할 것인가?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5-10 08:48

2000년대 가요계 최고의 스타는 그룹 핑클에서 솔로로 전향한 이효리였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노래를 제일 잘하지도 않았고, 춤을 가장 잘 추지도 못했다.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섹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대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당시만 해도 넥타이부대 아저씨들에게 스포츠신문은 연예인들에 대한 절대적인 정보 제공자 역할을 했다. 그들은 불경기를 극복하며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었다. IMF 사태 때 골퍼 박세리가 그랬던 것처럼 밀이다. 음반 시장도 신통치 않았다. 불황을 돌파해 줄 수 있는 대형 스타가 출현해 주기를 간전히 바라고 있었다.이를 간파한 스포츠신문들은 일종의 묵시적 ‘담합(?)’을 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이효리를 ‘시대의 피그말리온 조상(彫像)’(왕의 사랑을 받고 여자로 변한 상아 조각)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유방성형을 논란거리로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끌게 하고, 기술적인 노출과 섹스어필 홍보에 열을 올렸다. 강한 이미지와 강북 지향적 스타일도 가미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거의 매일 1면 톱기사로 장식했다.        대중은 스포츠신문사들이 쳐놓은 여론전에 걸려들었다. 점점 세뇌되어 가더니 얼마 가지 않아 이효리에 푹 빠지고 말았다. 마침내 이효리 신드롬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디어에 의해 세공(細工)된 이효리는 그렇게 대스타가 됐고, 여전히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이효리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여론재판으로 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옳고 그름이 정확하게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은 성급하게 누군가를 심판한다. 그리고 그의 악행(?)은 지라시 언론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당사자는 졸지에 ‘악인’이 되고 만다. ‘진실’에 대한 접근은 아예 이루어지지도 않는다.이처럼 여론전은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포장하기도 하고, 선량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악인’을 선인(善人)으로 둔갑시키기도 하는 ‘요술 방망이’ 같다.여론전은 또 전쟁터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은 마지노 선 근처에서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 평화를 사랑하는 군인들” 이라는 거짓 여론전을 펼치며 프랑스군을 속인 뒤 마지노선을 우회해서 프랑스를 공격했다.일본 정부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인식을 자국 국민과 국제사회에 심기 위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영상, 사진, 그림 등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처음에는 먹히지 않더라도 계속 홍보하면 언젠가는 아니라고 하던 사람이 ‘의심’을 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말을 믿게 만들려는 속셈이다. 최근 ‘드루킹’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파워블로거가 우리 사회를 발칵 흔들어놓았다. 이른바 ‘댓글조작’ 사건으로, 그는 인터넷에서 각종 여론조작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연일 이 일을 두고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특히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은 이 사건을 “19대 대선 불법 여론 조작 게이트”라며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수사를 요구했다. ‘드루킹’이 지난 대선 때 反안철수 정서를 조장하는 인터넷 글을 올리는 등 불법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앞으로 치러질 선거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매크로’라는 프로그램을 돌려 순식간에 여론을 조작해 엉뚱한 사람을 당선시키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지난 1월 중순 ‘드루킹’이 댓글 조작을 한 직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10% 가까이 급락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IT(정보기술) 강국이라고 자처하는 한국이 되레 IT에 당한 꼴이다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기자 | 2018-04-20 21:00

그는 주 의회 선거에 출마했으나 보기 좋게 떨어졌다. 의회 의장직에도 나섰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위원직에 도전해보았으나 낙선했다. 하원의원 선거에 나갔으나 역시 떨어졌다. 급을 높여 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어 상원의원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마침내 당선됐다.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는 아브라함 링컨 이야기다. 그는 일생을 통해 모두 27번의 실패를 경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늘 ‘실패를 밥 먹듯 하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마지막에 웃었다.링컨은 누구보다 실패를 많이 한 것이 성공을 이룬 비결이라고 말했다. 실패를 할 때마다 실패에 담긴 뜻을 배웠고 그것을 징검다리로 활용했다는 것이다.지금은 무소속인 이정현 의원은 보수의 불모지인 호남 지역에서 19년 동안 4번의 도전 끝에 금배지를 달았다. 처음 그의 지지율은 불과 1%대였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진정한 지역 일꾼이라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준 끝에 마침내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도 승리했다. 그 여세를 몰아 당 대표직에 오르기도 했다.김부겸 의원(민주당)은 진보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3수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진보 진영 인사가 당선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그의 진정성을 대구 유권자들이 받아들인 것이다.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이 좀처럼 반전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거의 포기한 듯한 분위기다.특히 지방선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후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그 누구도 한국당 간판으로는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나가봤자 떨어질 게 분명한데 뭐 하러 나가느냐는 것이다.한국당이 정권을 민주당에 내준 까닭을 알 것 같다.겁쟁이들이다. 하기야 놀랄 일도 아니다. 탄핵정국을 전후해 제 한 몸 살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인사들이 아닌가. 현역 의원들도 그랬고, 현역이 아닌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만일에 말이다. 한국당이 끝내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국당은 그 날로 문 닫아야 한다.언젠가 홍준표 대표는 “대구시장 내주면 한국당은 문 닫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배수진을 치겠다는 의지였으리라.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지금 대구 걱정할 일이 아니다.세상에,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해도 그렇지, 직전 집권당이자 제1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기네스북에 오를 창피한 일이다.나갈 사람이 없으면 대표라도 출마해야 한다는 발상도 무책임하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후보로 나서야 하는 게 옳다. 겁이 나서 나가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내보내는 일이야말로 꼴불견이기 때문이다.그동안 후보로 거명된 인사들이 서울시장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으면서도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출마를 포기했다. 정말 실망이다.정치를 아예 하지 않겠다면 몰라도, 앞으로도 정치를 할 생각이 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제1야당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후보를 내고 지는 것과 내지 않고 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내고 지면 다음에 기회라도 가질 수 있지만, 내지도 않고 지면 기회는커녕 ‘불임정당’으로 전락하여 유권자들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게 될 것이다. ‘불임정당’이 될 바에야 아예 문 닫는 게 낫다.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3-30 10:12

“엄밀하게 말하면 남북통일은 단계별로 하는 것이 맞고, 그것이 서로에게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제가 봤을 때 서로 준비해서 이루는 단계별 통일은 안 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많은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통일을 미루거나 반대할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2025년은 짧다면 짧고 멀다면 먼 미래예요. 우리 의식 속에서라도 2025년을 통일의 기점이라 설정해둔다면, 방법론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감각으로, 2025년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지면서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014년 소설 ‘싸드’를 통해 한반도 의 사드 배치와 미·중 갈등을 예언했던 소설가 김진명 씨는 지난 해 ‘예언’이라는 소설을 내놓은 뒤 인터파크 북DB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2008년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NIC)는 ‘글로벌 트렌드 2025’라는 전망보고서를 통해 “2025년께 통일된 한국을 볼 가능성이 있으며, 한반도가 단일국가로 통일되지 않을 경우 느슨한 연방 형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이 보고서는 또 통일 한국은 통일에 따른 막대한 재정 부담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한반도의 비핵화를 보장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인정과 경제적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2025년에 남과 북이 통일된단다. 불과 7년 후다.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리는가?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방식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들의 예언대로 정말로 통일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가 한 편의 잘 짜여진 각본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 그 증좌란다.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베를린에서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당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분단과 전쟁 이후 60여 년간 대립하고 갈등해 온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는 대전환을 이끌어냈다”고 지적했다.우연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듯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발표 후 오는 4월말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정상회담 후 남북은 본격적인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설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해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열 수 있기를 기대했다. 또한 남북 간 접촉과 대화를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화답했다. 평창올림픽에도 참가했고 남북 간 접촉과 대화도 재개됐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이끌기 위해 남과 북이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평화를 제도화하기 위해 안으로는 남북 합의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된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의 이 같은 의지대로 4월 말 개최될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비핵화와 이런 의제들에 대한 남북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체제보장을 받으려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통일과 관련해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 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중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우리가 주장하는 국가연합과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기억하는가.지금 남북 간 사이의 모든 일들은 3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파격적이고도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고 있다.그렇기에 김진명 씨와 미국 NIC의 ‘2025년 통일 예언’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 예언은 예언일 뿐. 전에도 이런 적이 많이 있었다.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 장성훈 국장 | 2018-03-23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