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비디아(NVDA) 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멈추고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지난 10월 말 52주 신고가인 212.19달러를 기록했던 주가는 지난주 175.02달러로 장을 마감하며 고점 대비 약 17% 하락했다. 이는 인공지능(AI) 열풍에 대한 시장의 시선이 예전보다 냉정해졌음을 시사한다. 투자자들은 이제 막연한 기대감을 넘어 막대한 AI 투자에 대한 확실한 수익률을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의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증거를 찾고 있다.
폭발적인 수요와 역대급 실적, 그러나…
주가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엔비디아의 성적표는 여전히 놀랍다. 젠슨 황 CEO는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블랙웰(Blackwell)에 대한 수요는 차트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폭발적이며, 클라우드 GPU는 이미 매진 상태”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회계연도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2% 급증한 57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분기 성장률인 56%를 상회하는 수치로, 매출 성장세가 다시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AI 하드웨어 수요가 집중된 데이터센터 부문의 성장은 더욱 눈부시다. 해당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66% 성장한 512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영업이익 또한 65% 증가한 360억 달러에 달했다. 엔비디아는 4분기 매출 가이던스로 650억 달러(±2%)를 제시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약 65%의 성장을 의미하는 수치다. 외형적인 성장과 수익성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이다.
슈퍼컴퓨팅 업계의 불만: “FP64 성능이 너무 낮다”
하지만 화려한 실적 이면에는 기술적인 우려가 존재한다. AI 워크로드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블랙웰’ 시리즈가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고성능 컴퓨팅(HPC) 커뮤니티의 반응은 싸늘하다. 핵심적인 문제는 ‘배정밀도(FP64)’ 성능의 부족이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신형 B300 ‘블랙웰 울트라’ 칩은 FP64 성능이 1.2 테라플롭스(TFLOPS)에 불과해, 사실상 이 기능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2020년에 출시된 구형 A100 GPU보다도 약 8배나 낮은 수치이며, 호퍼(Hopper) 아키텍처 기반의 H200이 제공하는 성능과 비교하면 격차가 28배 이상 벌어진다. 슈퍼컴퓨팅 고객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워크로드 성능 지표에서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과학적 시뮬레이션과 ‘정확도’의 딜레마
물론 엔비디아의 최근 행보는 철저히 AI 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AI 연산은 FP8이나 FP4 같은 저정밀도 텐서 연산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효율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호퍼와 블랙웰 아키텍처를 통해 ‘덜 정밀한 수학’으로 처리 속도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해왔고, 이는 AI 붐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기후 모델링, 전산 유체 역학(CFD), 재료 과학과 같은 복잡한 시뮬레이션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러한 분야에서는 타협할 수 없는 계산의 ‘정확도’가 생명이며,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FP64 성능이 필수불가결하다. 다행히 엔비디아의 디온 해리스(Dion Harris)는 향후 아키텍처에서 FP64 역량을 다시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엔비디아가 이 부분에서 만족할 만한 처리량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과학자들은 텐서 코어를 활용한 에뮬레이션 방식을 찾거나 필요한 FP64 성능을 제공하는 다른 경쟁사의 하드웨어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높은 밸류에이션과 잠재적 리스크
다시 주식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엔비디아 주가는 주가수익비율(PER) 약 43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지금처럼 빠른 성장세와 70%대의 높은 매출총이익률을 유지한다면 이는 정당화될 수 있는 밸류에이션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핵심 동력 중 하나라도 삐끗한다면 주가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엔비디아가 갑작스럽게 경영상의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은 낮다. 진짜 리스크는 반도체 산업 특유의 사이클과 경쟁 심화에 있다. 반도체 시장은 전통적으로 순환적이며, 아마존이나 알파벳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이 자체 칩을 설계하며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는다면 투자 심리는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지금이 매수 기회일까?
주가 조정으로 인해 몇 달 전보다는 가격 매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틀리 풀(The Motley Fool) 분석팀은 최근 ‘지금 매수해야 할 주식 5선’ 명단에서 엔비디아를 제외했다. AI 붐이 끝났다는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지만, 시장은 항상 미래를 선반영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성장 둔화의 징후가 단 하나라도 포착된다면 주가는 가파르게 하락할 수 있으며, 현재의 높은 밸류에이션은 투자자들에게 실수를 용납할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의 엔비디아 투자는 충분한 ‘안전마진’이 확보되었는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