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년 만에 다시 뒷걸음질 쳤다. 만성적인 저성장 기조에 원화 가치 급락까지 겹치면서 달러로 환산한 소득 규모가 크게 쪼그라든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불거진 대외 지정학적 분쟁이 환율과 물가를 동시에 자극하며 한국 경제 전반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12년째 3만 달러 박스권… 멀어지는 4만 달러 시대
최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등 관련 기관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6107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2024년 기록했던 3만 6223달러에서 0.3%가량 미세하게 줄어든 수치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2022년 큰 폭의 하락(3만 7503달러에서 3만 4810달러)을 겪은 이후 3년 만의 일이다. 2014년 처음 3만 달러 고지를 밟은 뒤로 벌써 12년째 4만 달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셈이다.
반면 주요 경쟁국인 대만은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대만은 2021년 3만 달러를 돌파한 지 불과 5년 만인 올해 4만 달러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대만의 1인당 GDP는 3만 8748달러로 추산되며, 이로써 한국은 무려 22년 만에 대만에게 소득 순위를 역전당하는 뼈아픈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4만 달러에 도달하는 시점을 2028년으로 다소 보수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발목 잡는 저성장과 치솟는 환율
이렇게 소득이 정체된 가장 큰 원인은 단연 저성장이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0%에 그치며 2020년(-0.7%)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의 파이 자체가 커지지 않는 상황에서 원화 약세는 치명타로 작용했다. 지난해 원·달러 평균 환율은 전년 대비 58.18원(4.3%)이나 급등한 1422.16원을 기록했다. 달러로 바꾸는 데 그만큼 많은 원화가 필요해지니 환산된 GDP 수치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환율 상승세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해외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 등 외부 충격이 국내 물가를 끌어올리고 성장을 짓누를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실제로 이달 초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을 뚫더니 급기야 200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1518.4원까지 치솟았다.
요동치는 금융시장과 향후 과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고 무역이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한국 입장에서 이러한 환율 쇼크는 꽤나 고통스럽다. 한국은행은 외국인 자본 이탈과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레버리지 투자)가 맞물리면서 주식 시장의 변동성 역시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 악재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때마다 시장이 훨씬 더 큰 폭으로 출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을 반영하는 환율이 안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계속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그는 “과감한 규제 철폐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